'닭'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치맥'으로 대표되는 튀긴 닭요리, 치킨을 떠올리지만 우리나라에는 치킨 이전부터 즐겨먹던 닭요리가 있었다. 바로 닭볶음탕이다. 매콤한 양념에 푹 삶은 닭의 환상적인 조화는 간장게장과 맞먹는 '밥도둑'이라 표현할 수 있을듯 하다.
하지만, 이 닭볶음탕은 끝없는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바로 명칭 논란. 닭도리탕이 친숙한 사람들과 닭볶음탕이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날선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닭볶음탕'이 옳은 표현이라고 인정했지만 오히려 논란은 더 커진듯 하다. 도대체 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차근차근 짚어봤다.
레시피 상으로는 일리있는 '닭볶음탕'
음식 명칭의 가장 기본이 되는 레시피를 살펴봤다. 계란을 말아서 만든 '계란말이', 순두부를 주재료로 바특하게 끓인 '순두부찌개'처럼 레시피는 음식 명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닭볶음탕의 경우를 살펴보면 닭을 토막내고, 삶아서 기름기를 살짝 빼준 후, 양념장과 갖은 야채를 넣고 물을 살짝 둘러 지글지글 익힌다. 레시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편적인 닭볶음탕의 레시피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듯 하다.
그렇다면, 닭볶음탕은 정말 닭을 볶을까? 일부 레시피에는 닭을 볶기도 한다. 맛술과 후추를 넣어서 볶으면 닭의 잡내를 없애주고 물기를 잡아준다. 게다가 닭을 끓이는 과정에서 뒤적거리는 행위 역시 '볶다'라는 사전적 의미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볶다'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이나 음식의 재료를 물기가 거의 없거나 적은 상태로 열을 가해 이리저리 자주 저으면서 익힌다'고 나와있다. 요리 레시피와 '닭볶음탕'의 상관 관계는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일부에서는 '닭볶음탕'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깊게 찾아볼 수록 점점 머리가 아파온다.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명칭 논란이 벌어졌을까?
닭도리탕 vs 닭볶음탕, 명칭 논란의 시작
닭도리탕이 '닭볶음탕'으로 바뀐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쓰여오던 '닭도리탕'이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국립국어원이 받아들여 '닭볶음탕'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한 것.
닭도리탕이라는 단어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이 단어가 우리말과 일본어가 무분별하게 혼용됐다고 지적한다. '도리'는 일본어로 새나 닭을 뜻한다는 것. 우리말 '닭'과 일본어 '도리'가 한 단어에 있어 어법 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후 방송이나 공문서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닭도리탕 대신에 닭볶음탕이라는 이름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에 가보면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짜장면'과 '자장면' 사이에서 오랜 괴리감이 있었던 것처럼 닭도리탕과 닭볶음탕도 하나의 고민거리가 된 것. 특히, 이 케이스는 '일본어'라는 명제가 붙어 더욱 민감해진듯 하다.
국립국어원의 결정 이후 닭도리탕과 닭볶음탕을 놓고 오랜 기간 동안 논쟁이 벌어져왔다. '닭도리탕'이 일본에서 온 말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된 사람들이 늘어난 것. 일부는 '도리'가 일본에서 온 것이 아니라 '도려내다'는 순 한글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의외로 오래된 단어, '도리탕'
사실 '도려내다'는 단어에서 '도리'가 등장했다는 주장은 속칭 '닭도리탕'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등장한다. 닭볶음탕의 레시피 상에는 닭을 토막내지 도려내지 않지만 '도리다'는 우리말이 '잘라내다'는 뜻도 있다는 주장 역시 존재한다. 그렇다면, 닭도리탕은 언제부터 우리 삶에 등장하기 시작했을까?
각종 고문서에서는 '도리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900년대 초 조선 말기의 최영년의 시집 '해동죽지'에서는 평양성의 명물로 '도리탕(桃李湯)'을 소개한다. 이 요리는 닭을 반으로 갈라 갖은 향신료를 넣고 반나절 동안 삶아낸 닭곰국의 일종. 지금의 닭도리탕과는 다른 음식이지만, '도리'가 단순히 일본어에서 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도리탕'에 관한 언급은 또다시 등장한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요리 전문가였던 이용기는 저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통해 '닭볶음'이라는 요리를 소개한다. 지금의 닭볶음탕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술안주로 좋다"고 소개하면서 "이 음식을 개성에서는 '도리탕'이라고 부른다"고 언급했다. 이는 평양이나 개성 등 음식이 유명한 지역에서는 도리탕이라는 요리가 존재했다는 뜻.
음식 역사 연구가인 한국학중앙연구소 주영하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도리'가 일본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팟캐스트 '타박타박 세계사'에서 그는 닭고기를 토막낸 것이 복숭아와 비슷하게 생겼고, 당시 선비들이 복숭아가 씹히는 즐거움을 '도리'라는 단어로 시에서 많이 표현했기 때문에 음식의 이름에서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표기법도 주목할 만 하다. 일본에서는 닭볶음탕을 '탓토리탄'으로 발음한다. 닭도리탕의 음을 그대로 따온 것. 주영하 교수는 "일본에서도 '도리'에 관한 얘기를 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며 "일본에서는 닭요리에 '도리'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심지어 닭을 주재료로 만든 탕요리도 별로 없다"고 설명한다. '도리'가 일본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닭도리탕 미스터리'
이 외에도 다양한 주장들이 닭볶음탕 논란에 가세하고 있다. '도리'가 고대 조선어에서 일본으로 전파됐다는 주장, 닭볶음탕이 아닌 '닭찜', '매운 닭찜'으로 명칭이 변경되어야 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닭도리탕과 닭볶음탕에 관한 논란은 확실한 근거가 없어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언어학자와 역사학자, 요리 연구가들의 연구가 조금씩 진행된다면 이러한 명칭 논란도 언젠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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